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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2007 중국 북경

중국 북경 8. 천안문과 자금성

 
햇살이 따갑고 9월말이지만 여름날씨처럼 덥기조차 한 오후 1시경...
중국 5.4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자 중국 명,청시대 황제의 궁궐인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에 도착하였다.
천안문과 자금성은 북경시내 한복판에 위치해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경복궁처럼...
천안문 광장의 첫느낌은
엄청나게 넓다 (광장이)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이)
였다..
잘못하면 사람 잃어버리기 딱 좋겠다...
천안문광장에 들어서자 마자  남대문 보다 큰 규모의 이름 잘 기억 안나는  커다란 문이 두개나 더 있다.  
망루같은 곳인데..
그리고 엄청나게 넓은  천안문 광장을 한참이나 걸어 지나서야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있는 그 유명한 천안문이 나타난다.
천안문 좌우로 국회의사당격인 인민대회당과 혁명박물관이 좌우로 있고 뒤로는 모택동 기념관과 인민영웅기념탑이 있다...
시내의 모든 건물은 인민대회당 보다 높게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인민대회당이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사실 건물 자체는 별로 높은 건물은 아니다..아파트 10층 도 채 안될 정도...
우리가 갔을 시점은 10월 1일 국경절을 맞아 화려한 꽃으로 광장이 단장되어있고 축제분위기였다..
자금성의 정문 격인 천안문...자주색의  紫禁城의 정문.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져있고 붉은 글씨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華人民共和國萬世) 세계인민대단결만세(世界人民大團結萬世) 라고 적혀있다.
천안문 앞은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큰 도로이며 지하도를 건너가야 들어갈 수 있었다.
천안문을 지난는 성문은 5개가 있는데 
맨 중앙에 있는 문은 황제만이 지나다니는 문이라서 국빈 귀빈들이 방문했을때 허용되눈 출입문이고 
일반인들은 그 옆의 나머지 4개의 문으로 다니게 돼있었다. 성문은 엄청 규모가 크다...
드디어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게되었다.
맨 처음 나타나는 단문(單門)은 황제가 전쟁터로 나가는 군대를 배웅 할때 나가서 잘 다녀 오느라 하는 문이라고 한다.
그 대문 들어가기 전 마당에는 사과나무인지 잘 기억 안나는 과실나무들이 많이 심어져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문이 오문(午門)
오문 들어가기 전에 입장권을 사야 자금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오문 부터 실질적인 자금성이다.
이 오문 앞 마당에서 죄수들을 처단했다고 하는데... 여기도 꽤 넓다..
자금성은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황제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수도였던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자금성을 짓기하였으며 1420년에 완공되었다. 
조선 건국시점(1392년) 과 거의 비슷하다..
자금성의 크기는 길이가 약 1킬로미터에 폭이 700여 미터
그리고 궁궐안의 방은 총 9999개 인데 1만개의 방이 아닌 이유는 萬이란 숫자의 의미가  하늘이나 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칸 모자라게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애가 태어나서 매일 방을 옭겨 잔다면 27년 걸린다고 한다.
자금성의 벽은 자주색이고 지붕은 전부 노란색이다 황금색.. 황제의 색이다..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노랑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자금성(紫禁城)이란 북두성 근처의 황제좌인 紫禁星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문을 지나 나타나는 문인 태화문이나 태화문 지나서 보이는 실질적인 황제의 집무실격인 태화전은 
북경 올림픽을 대비 해서 수리 공사중이라 보기에 좀 거시기 하였다...
태화전은 황제의 집무실이며 황제 즉위식 같은 공식 업무를 보는 궁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생각나겠지만 아카데미 9개부분 노미네이트의 '마지막 황제' 에서 3살된 푸이가  즉위하던 곳도
평민(북경의  정원사)이 된 63세의 푸이가 마지막 회상을 하며 찾았던 곳도 바로 이 태화전이다.
아쉽게도 공사중이라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마당이 엄청 넓은데 마당은 흙이 아니라 전부 다 네모 반듯한 돌이 깔려있다..(장난치다 넘어지면 무릎까진다...)
이 넓은 자금성(태화전)에 나무 한그루도 없는 이유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금성이 네모( 口 ) 나게 생겼는데 그 안에 나무 ( 木 ) 가 들어가면 곤란할 곤 ( 困 ) 자가 되니까 안 심었다는 이유
그리고 둘째는 나무 (숲)이 우거지면 자객이 숲이나 나무에 가려서 황제의 신변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화전 뒤로해서 중화전과 보화전( 둘 다 황제의 간이 집무실 휴게실 등등) 을 지나면 황제의 침실이 있는 건청궁(乾淸宮)이 
나타나고 건청궁 뒤로부터는 여인들 세상이다.
건청궁 뒤로 황후의 침소가 있는 곤녕궁(坤寧宮)이 있는데 乾청궁과 坤녕궁 사이에는 교태전(交泰전)이 있다. 
곤녕궁 뒤로 어화원(御化園)이라는 이름의 황실정원이 있는데 숲과 너무가 우거져있다.
어경정(御景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황제를 한번도 볼 일 없는 궁녀들이 황제폐하 한번 볼라고 올라가서 눈빠지게 쳐다보는 정자다.
불쌍한 궁녀들..
오문에서 마지막 문인 신무문까지 약 1킬로미터  
천안문에서 자금성 마지막 문이자 북문인 신무문을 나설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3시간 정도...
서서 걷고 설명듣고 사진 찍고 자금성의 규모에 놀라고 역사적 배경에 고개 끄덕여가며 재미도 있고 피곤하기도 하고..
마지막 신무문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이 커다란 성의 이름이 자금성이라고 적혀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古宮博物館(고궁박물관)이었다.
자금성을 나오니 마치 일본의 오사카성 처럼 성 밖에는 넓은 해자(호수)를 파 놓았다.  
그리고 사각형의 성 4군데 코너에는 망루(누각)가 있는 점도  일본의 성과 흡사하다..
많은 중국의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었는데 마침 가이드가 다녔던 장춘의 어느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중국학생들은 단체여행때 거의 츄리닝 차림이다. 일본학생들은 100% 교복이고 우리네 학생들은 사복차림이고...
자금성 북쪽에 정자가 보이는 작은 야산이 하나있다..
그 산의 이름은 경산(景山)이다. 북경시민의 휴식처인 공원인데 마치 서울의 남산처럼..
자금성의 호수를 팔때 생긴 흙으로 만들어진 산이라고 하는데 경산에 오르면 자금성 일대가 한 눙에 들어온다.
이 경산에는 슬픈 사건이 하나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이자성의 반란군에게 쫓겨 경산으로 도망와서는  홰나무 아래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나 백제 의자왕이 생각난다...
 
 

 


천안문 광장에서 맨 처음 나타나는 성문 (자금성의 첫번째 성문)

천안문 광장 천안문과 인민영웅기념탑이 보인다

 

 


10월 1일 국경절을 앞두고 꽃으로 치장한 분수대

 

 

 

 

 





천안문 바로 앞

 

 

 

 

 

천안문
 
 
중앙의 이 길은 황제가 다니던 길
 

단문 (자금성의 3번째 문)

 

 


오문 (실질적인 자금성의 첫째 성문이자 정문)

 

 

 

 

 

보수중인 태화전...황제즉위식같은 공식행사가 열리던 곳.

 

 

 

 

 

 


태화전 동쪽의 궁궐

 

 

 

 

중화전

 

 

중화전 내부

 





보화전

 

 

보화전 내부

 

 

화재가 나면 불끄는데 쓰는 물을 보관하는 청동 항아리

 

 

 

 

 

 


 

 

 

 

 

대석주

 

 


보이는 대리석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고 함. 이 큰 돌을 어떻게 운반했을까..?? 불가사의한 일.. 맨 아래 강이 있고 산이 있고 그리고 그 위로 구름이 있고 그리고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

 

 

 

 

 

 

 

황제의 옥좌

 

 

황후의 침소 교태전

 

 

교태전 내부

 

 

 

황후의 침소 곤녕궁

 

 

자금성의 정원인 어화원

 

 

 

 


어경정(御景亭)

 

 

 

 

 

 


자금성을 나와서 바라보이는 야산이 경산(景山)...자금성에 호수 파고 남은 흙으로 만든 산이다.

 

 

 

 

수학여행을 온 중국 중학생들...촌시럽다..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98년 북경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공연

 

 

 

천안문 야경

 

 

 

 

중국 인민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장소 1위가 바로 이 인민대회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