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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2007 중국 북경

중국 북경 6.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원 (臣頁 和 園 )

세째날 오전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원 (臣頁  和  園 )
북경 관광 사흘째인 오늘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과 천안문 그리고 자금성이다.
호텔에서 북경의 중심에 위치한 자금성으로 바로 가는 것 보다는 외곽의 이화원을 먼저 둘러보고 러시아워 지나서
자금성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유난히도 아침 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는 나는 중국에 와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보다 1시간이나 늦은 시차로 인해 아침 5시만 되면 눈이 뜨여졌다.. 우리시간으로 6시이니까..
티뷔 보다가 동트기 시작하자마자 화장실 갔다가 볼 일 보고 샤워하고 면도하고 그리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시내는 벌써 분주하고 버스 정류장에도 버스 기다리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교차로 횡단보도에는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관계로 사람들이나 차나 지 맘대로 알아서 지나간다...
저래도 사고 잘 안나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도대체 교통신호 질서 개념이 전혀 없다. 저래가지고 내년에 올림픽을 무사히 치를 수나 있을지...
불안하지만 자신만만하게 횡단보도 건너 맥도널드 가게로 들어갔다.
어제 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아침 메뉴는 어제 저녁 메뉴와는 전혀 다르다.. 빅맥도 없고.. 
그래서 그냥 햄버거와 핫 스파이시 치킨버거를  샀고 감자를 어깨어 네모나게 만들어  바싹 튀긴 거시기를 많이 샀고 
역시나 너무나 맛있는  이탈리안 아이스 카푸치노도 샀다.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아 식당에 못가겠다는 아내의 아침식사이자 식성 좋은 아들과 나의 아침 간식이다.
아무리 많이(?) 사도 4-5천원 이하이다.
중국와서 살면 맨날 맥도날드만 먹을것 같다... 당근 살이 찌겠지..
이리저리 중국사람들 구경하다 호텔에 돌아와서 사온것 내다놓으니 잘 먹는다..
그리고 나와 아들은 호텔뷔페에 가서 아침을 따로 더 먹었다 돈 아까워서...
배가 엄청 부르다..
버스에 타서 출발.
오늘도 가이드님은 기분 좋다 진심과 성의 넘치는 안내에 해설에 저만한 가이드 또 있을까 싶다...
발음이 약간 이상해서 그렇지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ㄱ 이나 ㅅ 받침발음이 잘 안되어 그래서 모택동이나 강택민은 전부 모태동이고 강태민이다.
뺏어가 안되어 빼어 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조사인 '은' 과 '는'  그리고  부사인 '~어' 와 '~애' 가 구별이 안된다... 
그래도 너무나 열심히 앞장서서 잘 걷고 몸 사리지 않고 고객들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화원에 도착할때까지 가이드의 중국 역사 설명은 계속된다.
청나라 9대 황제인 도광제가 죽자 네째 아들인 함풍황제가 10대 황제에 오른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서태후는 어릴 적에  자원해서 궁에 들어가서 궁녀가 되고 열 몇살에 후궁이 된다.
그러나 후궁이 되었지만 워낙 후궁들이 많아서 어디 감히 황제의 성은을 입을 기회가 흔하랴... 
자신의 재주와 끼를 믿는 서태후는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환관을 꼬드겨서 황제의 눈에 들게되고 
황제는 요염한 자태의 서태후를 보자말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 이후 황제는 오로지 서태후만 총애하게 된다.
서태후는 키도 작아서 쭉쭉빵빵 미인은 아니었지만 남자를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한다.
서태후는 성이 西씨라서 서태후가 아니라 서쪽 궁전에 살고있는 태후라서 西태후이며 자희황후가 정식명칭이다
함풍황제의 정실 황후인 자안황후는 東태후라고 부른다. 동태후는 착하고 마음씨 좋은 천사표 황후이다.
그래서  나중에 서태후에게 독살당하지만...
함풍황제가 죽고나서  함풍제와 서태후 사이에 난 아들 동치가 어린 나이에 황제위에 오르고 동태후 서태후 그리고
함풍황제의 남동생인 공친왕 이렇게 셋이 섭정을 하게되지만 야심 많은 서태후는 이들을 몰아내고  실권을 잡고는 
어린 황제 뒤에서 수렴청정을 한다. 당시에 동태후는 서태후에게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동치황제가 대를 이을 아들 없이 젊은 나이에 죽자(매독으로?)  서태후는 관례를 어기고 황제의 남동생과 자기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함풍황제와 자신의  양아들로 호적정리하면서 황제로 세운다.  
이 황제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부의)황제의 큰아버지이자 비운의 황제인 광서황제이다. 
광서황제의 입장에서는 서태후가 숙모이자 이모이자 양어머니가 되는 셈.
당시에는 사돈간에 결혼을 허용한 모양이다. 부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서...집안끼리 다 해먹기 위해..
광서황제가 어릴 적에는 총명하고 서태후 말을 잘 듣더니 머리가 굵어지면서 서태후에게 반발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생가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쿠테타를 음모하지만 누군가가 서태후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서태후의 노여움을 산 광서황제는 
12년동안 가택연금을 시켜버린다. 
이화원에 가면 광서황제가 감금되어 12년을 보낸 방이 있는데 방안에 벽돌로 담을 쌓아놓았다.
광서황제는 얼굴 못난 정실부인 말고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사랑하던 진비라는 후궁이 있었는데 그 진비를 서태후가
독살시켜 우물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진비의 우물이라는데 이번에 갔을때 보지 못한것 같다.
서태후가 말년에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되자 광서황제가 자신보다 더 오래살것을 두려워해 자기가 죽기 하루전에
감금상태의 광서황제를 죽이고나서 다음날 자기도 죽었다는 설이 있다. 아마 맞을 것 같다.
서태후는 그러고도 남을 여자다.  
1908년 서태후가 74세로 죽기직전 광서황제의 뒤를 이을 황제로 부의(푸이)를 지목한다. 
푸이황제는 광서황제의 동생의 아들(함풍황제의 동생 순친왕의 둘째아들의 아들로 서태후에게는 손자가 된다 )로서 
황제 즉위시 푸이황제의 나이는 겨우 3살이었고  겨우 3년간 황제로 있다가 1911년 중국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으로 인해 황제위에서  내려오면서 황제 세습제도 및 靑朝의 막을 내리게된다.
노래(경극)를 좋아하고 손톱을 길게 길렀던 그녀는 당나라 시대의 여황제 측천무후와 함께 역사상 가장 끗발있는 여인으로로 
역사에 기록된다. 
서태후는 젊게 보이기 위해 젖먹이는 여자들의 젖(모유)을 짜서 매일 목욕을 하고 진주가루로 얼굴 마사지를 했다고 한다.
진귀하고 값비싼 몸에 좋은 음식들만 골라먹는 서태후의 한끼 식사비용이 1만 5천명의 백성들의 한끼 식사비용이라고 한다.
20대의 연하남을 애인으로 두기까지 했다는 서태후...
그녀의 미모는 중국의 4대 미인에 견줄만큼 대단했다는데...
참고로 중국에서 미인을 표현 하는 대표적인 어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이다.
그중에서 각각 "침어(沈魚)", "낙안(落雁)", "폐월(閉月)", "수화(羞花)"의 대명사 격인
4명의 여인을 골랐으니 이들을 일컬어 중국4대미인이라 칭하였다.
서시(西施) -춘추전국시대
"침어(沈魚)"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왕소군(王昭君) - 한나라
"낙안(落雁)"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초선(貂嬋) - 삼국시대
"폐월(閉月)"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양귀비(楊貴妃) - 당나라
"수화(羞花)"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이화원은 원래 원과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건륭황제때 지금의 이화원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말기 함풍황제때 영불연합군의 침공으로 불타고 파손된 것을 나중에 서태후가 복원하여 이화원이라고 이름 지었다.
인공으로 만든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넓은 호수(곤명호) 와 인공섬 그리고 호수를 파낸 흙으로 만들었다는 만수산과
배운전을 비롯한 누각들이 이화원의 대표적 명소이다.
이화원에 들어가면 광서황제가 감금되어 지내던 옥란당 을 비롯하여 광서의 황후가 감금되어 지내던 선예관 
그리고 서태후가 거처하던 곳인 낙수당과 서태후의 산책길이자 세상에서 가장 긴 복도라고 하는 장랑이 있다. 
장랑의 기둥에는 서태후가 심심하지 않도록 별별 삼국지 그림들이 다 그려져있는데 하나도 같은 그림이 없다.
이화원 입구에는 바닥에 붓글씨를 쓰는 서예가 영감님들이 있는데 엄청 큰 붓으로 글씨를 엄청 잘 쓴다...
아쉽게도 시간 및 기타 사정상 이화원의 모든 것을 다 돌아볼 수가 없는 점이다..
호수 건너편 만수산에 보이는 불향각이나 배운전 등 누각들이나 곤명호의 인공섬으로 배를 타고 가보고 싶지만...


박금화 가이드가 중국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화원 입구

 

 

 




이화원 안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

 

 

 

 

 

 

 

 



연꽃 만발한 연못과 아치형 다리를 지난다

 

 

 

 

 


이화원: 곤명호와 만수산 불향각... 그림 된다...

 

 

 

 

 

 


곤명호 엄청난 크기의 인공호수
만수산과 불향각

 

 

 

 

 

 

 

 

 

 

 

 

 

 

 

 

 

 

 

 

 


호수를 파내고 그 흙으로 만든 인공산인 만수산에 지어진 누각들 불향각 배운전 등등..

 

 

 

 

 

 

 

 

 

 

 

 

 

 

 


이게 뭘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상품 드림...

 

 

 

 

 

 


서태후의 거처 낙수당

 

 

 

 

 

 

 


장랑 설명

 

 

 

 

 

 



장랑 옆 연못

 

 

 

 

 

 

 

 

 



바닥에 붓글씨 쓰는 영감들..(당국에서 돈 주고 고용한 알바라고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