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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행기/경상남도

대구의사 175차 밀양 종남산 4.

예림초등학교 (모교)방문

 

 

 

당시에도 운동장 하나는 상당히 넓다는 생각이었는데 36년만에 다시 와보니 역시 넓은 운동장이다...

 

사실 36년만에 다시 와 보는 것은 아니다..

1974년 2월에 졸업을 하면서 이 학교를 떠났지만 중학교때나 그리고 고등학교(마산고) 다닐때에 방학때 잠시 모교에 놀러온 적은 있었다...

그리고 여기 교정에서  고 1  사춘기시절 나의 마음을 뺏어간 그녀를 만나기도 했었고 헤어짐의 아픔을 맛본 장소이기도 하다...

(고 1 여름 방학때 집에 내려와있다 학교 빈교실에 공부하러 갔다가 만난 그녀...LKS )

어찌보면 그때가 첫사랑이엇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보고싶어하고 밤새워 연애편지를 써고 다음날 아침 편지 내용이 너무 유치해서 찢어버리고 다시쓰기를 반복한...

난 아직도 그때 왜 그녀와 헤어졌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사춘기 시절의 풋사랑이 다 그런것이겠지만....

 

  

 

 

까메오 출연해주신 고마운 회원님들...

 

 

 

손총의 모교방문 축하사절단...

 

 

 

 

 

 

 

 

손총의 귀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그 때 그대로...

 

 

 

세종대왕 동산도 그때 그대로...

 

초등학교에 하키부가 생겼나? 왠 하키 골대?

 

 

 

 

멋진 소나무도 그대로...

 

 

 

 

전교생 아침 조례를 하던  그리고 성건의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던..그리고 내가 올라가서 상장을 수여 받던 그 교단...

 

내가 1학년이던 1968년도 겨울에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고 반포되자마자  공무원인 부친의 영향으로 그걸 달달 외웠고

다음해 5월 학예발표회때 그 길고 긴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서( 시골에서 9살 아이가 그걸 다 외우기는 그리 쉽지는 않았던 당시 현실)

전교생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낭송을 했던 기억...

 

 

당시에도 2층이던 학교 교실도 아직 그대로 2층...

반 이름이 1반 2반이 아니라 자주반, 개척반(남자아이들)  그리고 협동반, 창의반( 여자아이들) 이었던 학교도 아마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반 이름이 바뀐것은 아마도 내가 3학년 아니면 4학년때 부터이지 싶다...

4학년 자주반 5학년 개척반 6학년 자주반..으로 기억한다...

 

 

 

 

 

분명히 기억나는 저 나무...포플러 나무로 알았는데...

 

 

 

 

방송실...

추억의 방송실이다...

3학년 때 였던가?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매일 저녁 학교 방송실에서 마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했던 기억...

예림 어린이 여러분.. 지금부터 (그만 놀고)공부를 할 시간입니다

매일 저녁 마다...(몇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 혼자가 아닌 방송반 몇명이서...교대로 돌아가면서...

 

갑자기 단짝이자 라이벌이었던 김경찬이와 신혜영이가 생각난다...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혜영이 그녀의 소식을 알 길 없지만...

보고싶다 김경찬 신혜영...

 

 

3학년 봄소풍때... 1971년..

담임샘 오른쪽 옆이 나..  내 앞이 경찬이..

 

 

 

 

 

 

 

 

 

당시 교장선생님 사택이 있던 자리는 밀양시 교육청이 들어섰다...

그래서 학교가 이렇게 좋아진 것인가?

 

 

 

 

 

 

 

 

 

 

 

 

 

 

 

 

 

 

 

 

 

 

 

 

 

학교 정문

 

 

 

 

 

저 나무는 아직 그대로인데...

 

 

 

 

모교와 예림 마을을 떠나 시내로 간다...영남루를 보기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