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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산행기/백두산(2010. 8)

백두산 11. 만주 용정(龍井)과 序時의 윤동주

백두산 11. 마지막 날...  만주 룡정(龍井)과 序時의  윤동주

 

6시 모닝콜..

4시에 잠들었는데 겨우 2시간 자고 일어났다... 내가 먼저 씻고 짐 챙기고 그리고 30분 뒤 최교수를 깨웠다

7시 반까지 식사하고 로비에 모여야 된다.

오늘은 연길 공항으로 이동해서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날인데 어제 못 갔던 용정의  대성중학교(일제 저항시인 윤동주의 모교)에 갈 예정

어지럼증은 거의 가라앉은 듯 싶다 정상의 80% 정도..

그래도 아침 식욕은 여전히 없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살지... 싶어서 2층의 식당에 내려가보니..별 먹고싶은 음식들도 없다...

 

 

 

다행히 죽 같은 누룽지가 있었다...

흰 밥을 더 넣어 죽처럼 만들어서  계란요리랑 먹었다  나중에 감자볶음이 나왔는데 그건 매우 맛있었다...

아무리 밥 생각이 없어도 식욕이 없어도 먹히는 것이 있다... 물론 갈비살 꽃등심 이런건 당연하고... 

반찬들 중에는

계란 두부 오뎅  이 세가지는  정말로 아무리 아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촌스럽기 그지 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원래 사람들이 제일 잘 먹는 음식은 어릴 적에 자주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나 어릴적에 바다 활어회를 구경 못해서 그런지 30 넘어서 처음 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생굴과 해삼 전복 날계란은 못 먹는다 안 먹는다... 익히면 먹지만...

 

옛날 시골에서 계란 두부 오뎅 김 은 소세지와 더불어 최고의 반찬이었다....그래서 지금도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잘 먹는다...^^  

 

 

 

 

연길역의 아침

 

 

 

 두 분 회장님과..

 

 

 

 

우리 숙소였던 대주호텔

 

 

 

길거리 풍경  수박 말고 뭐지? 참외인가? 

 

 

 

간만에 버스풍경을 찍어봤다... 

집으로 돌아간다니 다들 표정이 밝다. 특히 서찬호 선생님...

 

 

 

 

 중국 도로는 대개 전부 다 세멘트.. 아스팔트는 구경을 못했다... 중앙분리대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연길-용정간 국도에서는 200미터 간격으로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다. 과속감시 목적이라 한다...

200미터 간격의 무인속도 감지 카메라를 만들기 보다는 200미터 간격으로 경찰관을 배치하는 편이 훨 싸게 치이는 나라인가보다...

하기사 남는 것이 인력이니...

 

용정까지 가는 길  계속해서 일정간격으로 경찰들이 서 있었다.

 차량들도 전부 정속주행..

 

 

 

용정 입구  곳곳에 경찰차..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그  해란강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강)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삼륜차

나 국민학교 시절(70년대 초)에 본 적 있음... 

 

 

 

룡정중학교 도착

 

 

 

 

 

용정중학교 / 중국 오성홍기가 나부낀다.

 

 

 

 

용정중학교 안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입구에 있는 대성중학교

 

 

 

기념촬영

 

 

 

 

 

 

윤동주 시비 앞에서

 

 

 

 

여기가 대성중학교 옛터라고 한다

 

 

 

 

 

 

 

대성중학 옛터

 

 

 

윤동주 시비

 

 

 

서시 / 1941년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은 말도 안되고  한 100점 정도만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자...

  

 

 

역사관 직원의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

 

 

 

 

룡정의 역사... 룡드레 우물가

 

가곡 선구자 2절인가에 용드레 우물가 라는 가사가 나오지 않던가?

 

 

 

룡정의 지명의 기원이 된 룡드레 우물가

 

 

 

 

경청중인 우리 회원님들..

 

 

 

일제와 싸운 대한독립군의 장군님들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등

 

 

 

특이한 사진... 맨왼쪽..

새파랗게 젋은 김일성의 사진이... 저 나이에 정말 사령관?

정말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이 젋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긴 했단 말인가?

아니면 날조된 사진인가? 북조선 관광객들이나 북조선 당국을 위한 ?

 

 

 

 

 

 

 

 

 

룡정중학교

 

 

 

저항시인 윤동주

 

 

 

윤동주의 일생   해방되던 그 해에 해방도 못 보고 순국하셨구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민족시인 윤동주..

나는 서시도 좋아하지만 별 헤는 밤이 더좋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문익환 목사와 동문수학

 

 

 

 

 

 친구?

 

 

 

 

 왠지 차인표를 닮은 듯한...^^

 

 

 

 

 

 동지사대 유학시절

 

 

 

 

장례식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  친필원고

 

 

 

 

 

 

 

 

방명록 작성중인 강인구 대장님

 

 

 

 

 

 

 

 

 

 

놀랍게도 김정희 선생님 10만원....

혹시 10만원 적고 봉투에는 만원만 넣은것은 아닐까..

아니면 만원을 적는다는 것이 착오로 0 하나 더 적은 것은 아닐까?

 

총무에게 돈 2만원 빌린 것을 죽어도 못준다고 생 난리부르스 치던 분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이름만 적는 노트인 줄 알았다  장학금을 내는 사람들만 적어야되는구나 알았을땐 이미 때는 늦었다.

다행히 큰 돈을 적어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책방에 들러 4천원 하는 윤동주시집 한권을 샀다.

아니  기왕이면 두권은 사야지 싶어 두권을 샀는데

마침 공항에서 E-포럼(책 만드는 회사)  이영희 사장님이 책을 못샀다고 나에게 팔라고 사정을 해서 그냥 선물로 줬다. 

적임자에게 선물을 한 것 같다...

딱히 줄 데도 없었지만... 

 

 

 

 

 

 

 

기념품 상점에는 살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시원햇다...^^ 

 

 

 

 

나와서 다시 대성중학교를 배경으로 촬영...

 

 

 

 

 

 

 

 그리고 우리는 공항으로 갔다.

 

 

 

 

 

연길공항

 

 

 

 

대한항공 연길공항 직원이  자초지종 설명과 함께 죄송하다면서 백배사죄 사과를...

 

 

 

문제의 그 스틱들...

대부분 회원들은 가방 안에 스틱을 넣었고 몇몇 회원들만 이렇게 따로 가져와서 부쳤었다...

비행기만 실컨타고 정작 백두산 구경을 못한 불쌍한 스틱들...

나는 정말 1년만에 또 20여만원이나 하는 레키 스틱 잃어버린 줄 알았다...아이구 내새끼...

 

 

 

 

연길공항 출국

 

 

 

백두산 천지 사진이 멋있다.

 

 

 

 

12시 15분발 비행기인데 우리시각으로는 이제 11시 04분...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다른데 관광이라도 좀 더 하지...

 

 

 

 

탑승...

 공항 면세점을 들러봐도 살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상점도 달랑 한군데뿐이고 조잡한 물건들뿐..

 

 

비행기 출발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앉아서 뭘 먹거나 마시면서 쉴만한 공간이 없다..딱 한군데 구석에 가게가 있었다.

백선생이 동민이 데리고 신라면 먹이고 잇었다... 중국신라면인데 맛은 우리것과 다르긴 하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햇다

옆자리에 앉으니까 종업원이 다가와서 자리값이 최소 10위안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안 사먹음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말...

작은 물 한병이 5위안 (천원)  캔콜라가 10위안   과립쥬스는 15위안   커피는 20위안(4천원)

 

장고끝에 악수를 두었다.

 커피 한잔을 시키면서  중국 점원 아가씨에게 양을 좀 많이 달라고 했다. 리필 안되니까...

커피잔에 한 가득 커피를 주는데 물만 많이 넣고 커피나 크림 설탕은 딱 정량(반 잔에 딱 어울리는)이다.

이게 커피냐 숭늉이냐  너무 연해서 못 먹겠다고 커피와 크림을 더 넣어달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절대 안된다고 한다.

이런 날강도같은...장께 심뽀  문디 가스나... 커피 좀 더 넣어달라고 하는데도...

 

 

 제 시각에 이륙을 했다...연길아 안녕 다음 백두산 올때까지 안녕....

 

 

 

 

올해 환갑 되신 박상태 원장님.. 뭘 보고 계실까 무슨 생각 하실까...

시간나면 디지탈 액자에 사진 넣어 드려야 되는데 내가 시간이 너무 없다...

돌아가면 또 산행기다 뭐다 잔뜩 써야되고 몸도 안 좋고...마누라도 아프고..애 뒷바라지도 내가 해야되고...

 

 

 

 

간만에 앞자리다...늘 비행기 날개만 보이다가 왠일로...날개를 피하다니..

 창가가 원래 내 자리인데 박상태 원장님께 앉으시라 했다...

중국 땅 별로 사진에 담고 싶지도 않았고 날씨도 좀 그렇고 오후가 돼서 사진에 구름이나 대지가 잘 나오지도 않을 것 같아서...

 

 

기내식은 장어덮밥..고추장볶음은 무한(?)제공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맛이 별로라는 사람도 있고...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내식을 맛있게 먹었던 적은 5년전 서유럽갈때 먹었던 대한항공 비빔밥...^^  

 

 

이런 것들도... 닭고기 샐러드는 맛이 별로..

 

맥주는 사실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래도 돈 아까워서 두개 받아서 나눠 마심...대신에 땅콩은 많이 받음...

 

 

 

 

드디어 인천공항 도착...바깥 날씨 죽이겠다...

 

 

7시 15분발 대구행 국내선 비행기까지 무려 3시간이나 남아서 우리는 국내선 A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단체로 18명이나 되는 대군이 움직여서 지하 1층 식당가로 내려가서 이르지만 저녁식사를 했다.

한식당의 메뉴의 모형이나 그림들은 그럴듯 한데 막상 시켜서 음식을 먹어보니 가격에 비해 맛들은 별로다....

그나마 해물짜장이 최고인기..

그냥 김치찌개나 순두부  된장찌개 이런 것들이 낫겠다는 생각은 맛없는 음식들 다 먹고나서 드는 생각...

 

김정희샘이 주문한 물랭면이 없어서 생긴  작은 해프닝과 애들싸움은  긴 여행에서의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총무의 애환을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총무도 승질 좀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싶다...

김정희샘께 죄송한 마음...

 

대신 식사후 남는 시간동안 맛있는 팥빙수 과일빙수 등등 디저트를 돌렸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

 

 

 

대구공항  짐 찾기 (3박4일의 마지막 사진)

 

 

 

 

대구에는 한줄기 소낙비가 지나갔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비가 그친 뒤였고 비교적 시원한 날씨였다.

우리가 시원한 백두산에 있을 즈음 그동안 대구는 폭염이었다고 한다

 

대구공항 출구로 나오니 4일전 환송을 나왔던 사모님들이 거의 그대로 나오셔서 무사귀국한 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 집사람도 아프지만 않았다면 나왔겠지...  

이경호 선생 부인이 공항으로 서방님 영접을 나와줘서 최교수와 나 이렇게  잘 얻어 타고 집으로 잘 돌아갔다.

부러웠다... 

 

집에 돌아가니 어제부터 항암제 주사를 맞기 시작한 아내가 속이 안 좋은지 누워있다... 

아픈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다...

가지 말았어야 했나?

백두산 대신에 마누라 곁에 있어야 했나?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나는 솔직히 물음표이다....

그만큼 이번 백두산행은 나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였기에....

그렇지만 만약 이번 여행기간중이 아내의 암 수술일이었다면.. 그건 틀림없이 못 아니 안 갔겠지...

 

모르겠다...잘한 짓인지 잘못한 짓인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을....

 

 

 

어쨋든..

4년전에 갈려다 못 간 만족의 靈山 백두산 드디어 결국에는 다녀왔다...

비록 계획했던 서파종주는 못했지만...그래도 꼭 봐야할 천지를 원없이 속 시원하게 완전하게 다 눈에 그리고 카메라 렌즈에도 담았다...

그만하기도 다행이라난 생각이다...

내 몸에 이상이 생겨서

여행도중 에상치 못했던 일련의 사고 해프팅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것들이야 늘 가능한 해프닝들이고..

우리 회원들 중 아무도 크게 다치거나 부상 입지 않고 무사히 잘 돌아온 것 그것만큼 다행스런 일이 있을까...

다행히 나의 몸 컨디션도 거의 정상으로 되돌아 온 것 같고...

많은 교훈들도 얻었고 경험도 쌓았고...

이제 우리 산악회는 나날이 발전하는 것 같다...

9차를 마쳤으니 이제 내년에 다가올 10차 해외산행을 기대하여야겠다...

 

어디가 될까 내년은? 다음은?

 

난 나의 건강과 가족과 직장과 그리고 산과 우리 산악회원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아 참 나의 산행기를 읽어주시고 대리만족하는 분들이 계셔서도 너무 행복하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2010년 8월 11일

 

4년전 돌아가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기일에....

 

 

 

 

어제 새벽에 모친의 산소를 다녀와서(원래 돌아가신 날 하루 전날이 제사지내는 날이라고 함)

 

 

 

내고향 밀양(상남면 예림리)과 그리고  내년 우리 산악회 산행지인 종남산...구름에 가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