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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행기/충청도

민주지산 삼도봉 (2004년 10월 24일)



대구시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ㄱ의대 동창회에서 해마다 가는 등반대회에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우리 동기들도 신청자는 5명이었지만 결국 홍성범과 나 둘만이 선배님들 속에 끼어서 54회의 존재를 알렸다.


동인동 의과대학교 앞에서 버스 6대에 졸업기수별로 나누어 분승 7시 30분경에 출발했다.
칠곡 휴게소에서 48회 선배님들이 준 김밥도시락과 커피 한잔이 아침..

충북 영동군 상촌리 물한계곡 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시작..

오랜만의 등산이라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테니스로 다진 기초체력이 있어서인지 잘 올라갔음..
그러나 약 30분정도 올라가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약 7-8년전쯤에 사가지고 거의 안 쓰다가 어쩌다가 가끔 신었던 등산화의 밑창이 1/9 쯤 떨어져 덜렁거리는 것...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다가 도시락 사 준 마누라의 성의를 생각해서..즉 새벽5시 30분에 일어나서 정성스럽게 사 준 도시락을 정상에서 까먹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올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곤 주특기인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끈이 없을까?
튼튼한 끈이?

올라가다가 두리번 거려봤다...

순간 내 목에 걸고 있는 명찰이 생각났다...
명찰끈...

그래 이거야..

이름표를 떼내고 끈을 신발에 맬려고 보니 짧았다...
마침 쉬고있던 49회 선배님들 중에 아는 선배님이 눈에 띄었다..
죄송하지만...

그 선배님의 목걸이 줄 까지 두줄로 신발을 묶었다..

다행히 더이상 덜렁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 가다가 느슨하게 매여졌던지 몇번 끈이 풀리거나 벗겨지기도 했지만 결국 무사히 잘 올라갈 수 있었다...

어떤 선배님은 웃으시면서 등산화가 주인몸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씀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발 뒤끔치 무좀 있어 껍질 벗겨질락 말락하던 부위가 결국 까져버렸다...따갑다..
뒷끔치와 신발이 가능한 닿지 않도록 걸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지 허리벨트가 툭 떨어져 못쓰게 돼버렸다...
등산 바지도 오래동안 안 입다가 갑자기 입어서 허리벨트도 맛이 가서 끊어져 버렸다...
혹시 배 살이 쪄서 그렇게 됐을거라는 오해는 안 해주시길 바람..

바지가 헐렁해져서 걷가가 자꾸만 흘러 내릴 것만 같았다...
등산도 안하다가 하니 이렇게 되네..준비성..

올라다가 더워서 고아텍스 파카를 벗어 들고 걷다가 허리춤에 끼고 걷다가 땀을 흘려 수건으로 딱아가면서 씩씩하게 잘 올라갔다..

혹시 올라가다가 엉덩이 부분이 혹 실밥이 터지면 어쩌지 이런 걱정까지 되니 다리를 쭉 뻗어 올라가기도 부담됐다...


그러다가 1시경 삼도봉 정상에 도착했고
48회 선배님들 속에 끼어서 도시락을 까 먹었다...
배 하나도 안 고픈데...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아내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가급적 맛있게 먹을려고 노력했다..

48회 선배님들과 형수님들께서 워낙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준비해 오셔서( 홍어와 돼지삼겹살 가오리 무침회 막거리 소주 과일 커피 등등)
배가 불러 다음 등산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고 말았다..
김원섭 서경진 조지호 선배님 등...그저 후배들 조금이라도 더 먹게 배려해주시고..


대부분 사람들은 삼도봉에서 왔던 길로 하산을 하고 일부 뜻있는 매니아들은 석기봉으로 출발했다.

석기봉까지 오르막 내리막 또 오르막을 1시간여...
내려가는 길에서 다리가 풀려버려 더 이상 등반은 무리였다..
애초에 생각은 민주지산까지 갔다가 내려올려고 하였지만...

물한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왜그리 내려가는 길이 힘든지...
오르막 등산은 기본 체력이 잇어 잘 올라갔지만...
급경사 내리막은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빨리 내려갈 수가 없었다..

동기인 홍성범이 먼저 내려가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에 오던 49회 선배님들도 나를 추월해서 다들 가버렸다...
나중에는 내 뒤엔 한명도 더 내려오지 않았다...

저 앞에도 물론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혼자서 하산 등산로를 걷길 두어시간..
중간에 아무도 없는 산중에 겁도 났다...
반달곰이 덮칠까?
늑대인간은 없을까?
집나간 개라도 댐비면 내가 이길까?
하산길의 시커먼 동굴옆을 지날때는 더더욱 겁이 좀 났다..
저 동굴에서 갑자기 곰이라도 나와서???

인기척은 없고..
고요..
적막...

휘파람도 불어보았다...
야호 소리�려다가 혹시 야생동물들이 올까 그만 뒀다..

계곡물에 수건 적셔 윗몸 닦고 땀에 젖은 속옷과 셔츠를 벗었다..
어 시원하다..
오줌도 갈겨보았다...
누가 보나 뭐..어떠리.ㅎㅎㅎ


절벽옆 가파른 길 내려올때 발 헛디디면 내일 석간신문에(조간에도 안나고) 삼도봉에 변시체 발견 기사 나올까 겁도 났지만...

혼자서 잘 내려왔다...
두어시간 정도..
너무나 심심한 하산길이었다...

어둑해질 무렵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만 있었다...
다들 학교 야영장으로 갔나보다..좀 기다리지..야속..

혼자 투덜 대며 털레털레 아스팔트길을 걷기를 약 30분...
내가 여자 그것도 젊은 아가씨였다면 아스팔트 길 혼자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차가 더욱 더 속력내서 지나갈까?
아니지 감속해서 혹시 옆에 태워갈까 싶어 쳐다라도 안 보겟어?

그렇다고 이 험상궂은 인상에 이 덩치에 히치 하이크라도 하랴?
태워주고 싶다가도 인상보고 등치보고 확 지나가지 싶다...

손 들고 차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차 얻어타고 갈 엄두도 사실 안났다..
임장 바꿔서 내가 지나가다가도 이런 등치의 험한 인상 아저씨가 차 좀 타워주시요 하면 안 세우고 지나가지 싶다...

지가 내 언제 봤다고?
저 등산가방안에 흉기 없어란 법 있나?
등산객을 가장한 흉악범일 수도 있어...

그렇게 30분 정도 더 걸어서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다들 저녁 드시고 노래자랑..풍악을 울려라이..

동기 성범이가 마중나와서 밥 챙겨주고 국 챙겨주고 돼지 바베큐 챙겨준다...

맥주 한잔 해라..수고했다..
고맙다...캬~ 좋다...

에구 서러버라...동기들 많이 참가 안한 댓가지뭐..


그렇게 배불리 먹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또 선배님들이 권하는 소주와 돼지고기 수육..안주...
서경진 샘은 치사하게 과자(홈런볼)도 후배한텐 "해당안됨" 이라며 안 주고 자기만 다 먹고...그 많은 웨하스 입안에 다 털어넣고...
49회 이관식 샘은 그저 후배 술한잔 더 줄려고 하시는데...
나중에 이 원수를 꼭 갚으리... 홈런볼 한통에 맘 상한 후배..


도착하니 9시...

몸은 피곤하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그래도 마음은 푸근하다..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한 가을날의 하루였다...

게다가 삼성이 야구까지 이겼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