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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도

고교시절인 35년전으로... 아구찜 & 마산고등학교

6월 6일 현충일...

아내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지금은 통합 창원시가 된 마산으로 가기로했다

이유는

지금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일하고있는 큰아들이 후반기에는 창원 파티마병원에서 인턴으로 6개월을 보내야할 병원이라

아내가 혹시 혼자서 차 몰고 큰아들을 보러 갈 수도 있기에 어디쯤 병원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가르켜 줄 겸 

그리고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 3년을 보낸 그 곳 학교와 하숙집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가보기로...

 

대구 황금동 집에서 창원 파티마병원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집에서 시내를 지나 남대구 I.C까지 가는데만 30분 (봉덕동 -서부정류장 경유)
화원톨게이트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올려서 동창원 I.C 까지 약 50분 그리고 창원 시내로 해서 병원까지 약 10분 정도

 

창원 파티마병원은 예전에는 내가 다니던 마산고등학교가 있는 완월동 옆 장군동에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창원으로 확장 이전..

병원 규모는 대구 파티마병원 보다는 적고 달서구의 구병원 비슷한 규모..

비교적 조용한 병원이었다..창원 마산의 환자들은 인근의 삼성병원을 주로 많이 이용하는듯...

 

 

 

  

 

 

배가 고픈 시간..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 둔 아구찜 잘한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의  많은 식당들을 놔두고 굳이 여기로 찾아간 이유는 숨은 맛집이라고 해서...

오동동 아구찜은 다음에 가보기로 하고...(예전에도 할매아구찜 가서 먹었던 적 있고...)

어느 식당인들 다 마찬가지이지만  오두막 초가집 허름한 식당일때의 인심과 맛은  한번 유명세를 타고 방송을 여러번 타고 인터넷에 알려지고해서

손님들이 대박 터지고나서 새로 식당을 이전 증축 확장하고나면  손님은 많이지지만 그 맛과 인심은 대개 잃게 된다...

오동동 아구찜의 나름 원조라고 하는 유명식당들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알려지지 않은 식당을 검색해본 것..

 

우리가 찾아간 곳은 마산역 앞 석전동의 한일아파트 2차 상가의 제일식당

 

 

 

비교적 저렴한 가격

 

식당은 상당히 허름하고 좁다  아파트도 오래되고 상가 역시 낡았다.

 

 

 

원래 오동동 가면 이런 밑반찬들은 없다

달랑 물김치 뿐이다

그래도 여긴 서대 라는 이름의 생선구이를 준다..

 

 

 

 

아구탕

1인분 5천원   개운하다

 

 

 

아구찜 제일 작은거/소  15000원

 

좀 많이 짜다... 원래 바닷가 사람들이 짜게 먹긴 하지만 좀 짜다

안 맵게 해 달라고 주문해서 전혀 조금도 맵진 않았다

아내가 매운것을 싫어해서..

 

매운맛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짠 맛 때문에 그닥 맛있게 먹은것 같진 않다

 

솔직히 숨은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오긴 했지만 주인 내외분이 너무나 소박하고 친절한 것 말고는 그리고 오동동 골목에 비해 저렴한 것 말고는

그닥 큰 매리트는 없다...

일부러 찾아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고...^^

 

 

 

 

 

 

 이어서 우리는 마산의 옛날 내가 지내던 완월동으로 차를 몰았다

창원과 마산이 통합이 돼서  예전에는 마산과 창원이 완전 다른 도시였는데...이젠 창원이 곧 마산이고 마산이 곧 창원이다

오리지날 마산시는 회원구와 합포구 두개의 구로 나뉘어져있는데 예전 명칭으로 북마산 구마산 일부가 회원구이고 내가 지내던 신마산은 합포구로..

 

무학산이 보이고 몽고정이 얼핏 보이더니 이내 자산동을 지나고 완월동으로...산복도로에 접어들어 학교로 먼저 가본다..

도로는 그대로인데 상가와 점포는 완전 바뀌었겠지..

 

노래 곡목 적어서 카셋트 테이프 제작을 주문하던 레코드점이 저기 있었지...그때 주로 신청했던 팝송 중에는 비지스 카펜터스와 아바의 노래들이...

 

 

 

 

 

 

 

 

 

 

 

 

 

 

 

 

 

정문이 이렇게 변해버렸다...

 

교련복 입고 등교하면 정문 입구 중간에 고3 선도부장이 딱 버티고 서 있고 

그 옆에는 대위 계급장의 군복입은 교련선생님이..썬글라스 끼고 서있고...

학생들은 억수로 긴장한  자세로 멸공인지 뭔지 잘 기억 안 나는 구호와 함께 힘찬 경례를 부치며 들어오던 기억...

 

 

 

 

 

 

 

 

 

이젠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당시의 교장샘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봄이면 그 넓은 운동장을 뺑 돌아 심겨져있던 수령이 수백년 정도나 된 왕벚꽃나무의 벚꽃이 만발해 있던 운동장..

 

 

 

 

저 담벼락에 기대 서서 아래 통학길을 지나던 여고생들을 힐끔 쳐다보며 마음 졸이기도 하던 시절... 

용감한 친구들이 지나는 여고생에게 농담 던지면 그 여고생이 맞받아 치며 하는 말이...

어이 너그들 결혼 상대는 저기 밑에 쟤들이거든...

 

길 하나 사이로 완월국민학교가 있었다...

 실제로 결혼 상대는 그 정도 나이차이가 맞기도 하고^^  고 1이나 초등 6학년이나 겨우 4살 차이인데..

 

 

 

 

 

새로 증축한 교사/ 옛날 교실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여기가 생각난다...

 

 

 

양지 바른 잔디밭에 앉아서  공부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그 당시가 생각나서 일부러 저 곳에서 저렇게 포즈를 취해봤다

사진 찍어주는 아내는 내가 왜 저 곳에서 저렇게 사진을 찍는지 잘 모르고...

 

 

 

 

유난히도 넓은  운동장..

 

 

 

 

내가 고 3 때 재창단된 야구부는 이제 전국 4강에도 심심찮게 들고 가끔 우승도 하는 명문팀이 됐다..

옛날에는 마산상고가 마산을 대표하던 고교야구팀였지만 이젠 마산고가 강호가 되었다

오늘 황금사자기 준결승전 하는 날인데 중계를 할련지 모르겠네...

이겨서 결승전에 올라 우승을 했음 좋겠다...

 

 

 

 

 

옛날 사진을 떠 올리며 그 장소에서 사진을..

 

저 소나무가 자라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나무가 윗 사진의 그 소나무?

 

좀 비슷?

 

 

 

 

교실 뒷편에 있던 연못..

 

 

 

 

 

 

 

 

35년전이나 지금이나 연꽃은 그대로이겠지...연못의 물도?  돌도 그대로?

아른드리 수양버들이 있었지 참...

 

 

 

 

당시엔 이런거 본 기억이 없는데..

 

 

 

 

고 2때이던가 고3때 이던가 새로 지었던 강당...

농구부가 창단 되면서 지었었지....

 

농구부 연습장 및 강당으로 사용되던..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전국의 고등학교를 탐방해서 학교와 학생들 소개하고 장기를 자랑하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더라?

우리 학교에서도 녹화를 했었지...그 때 나도 저 위 스탠드에 앉아서 피디가 시키는대로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

그게 벌써 35년전 일이다

 

 

 

 

고 2 교실과 본관을 연결하던 통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2층으로 연결시켰네..

당시는 1층으로  지나다녔는데...

 

 

 

구내식당에 얽힌 추억은 참 많다..

 

 

 

10교시 수업 중 8교시 마치면 20분 정도 길게 간식 시간을 주었다

저녁 도시락을 먹거나 아니면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당시 라면 한 그릇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껏  50원 아님 100원 정도..

 

8교시 마치자 마자 막 뛰어가서 줄 서서 라면을 사 먹었던 기억

 

라면이 요즘 같은 그런 라면이 아니라

큰 아주 큰 가마솥 끓는 물에 라면을 수십개 투하하고 삽으로 스프를 퍼 넣고...

파?  계란? 김치?  택도 없는 얘기고... 

오로지 라면과 스프 뿐..멀건 국물에  라면은 아마 한개로 2-3인분은 족히 만들었지 아마

 

플라스틱 그릇에 라면 면발은  두 세젓가락 정도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고추가루 국물...

그게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었지...

 

가끔 친구들과 내기를...

엄청 뜨거웠는데 뜨거운 라면을 국물도 남김 없이 가장 빨리 먹는 사람은 라면값 안 내기..

 

주로 내가 1등을 했던 기역...

덕분에 요즘도 어지간한 뜨거운 음식은 너무나 잘 먹고 빨리 먹는다....

 

이 잘못된 습관이 이 무렵부터 생겼는지 아닌 인턴 레지던트 시절에 생겼는지는 정확하진 않다...

 

 

 

 

1학년 교실이 있던 곳은 건물은 간데 없고 주차장만 있네...

 

1학년 9반이나 10반 교시에서는 창열면 테니스장이 잘 내려다 보였다..

 

당시 전국 우승을 늘 차지하던 3명의 선배...

전창대 전영대 이우룡 선배...

그 중 전영대 선배가 아마 가장 유명해졌지 싶다...U대회에서도 우승인가? 그 후 국가대표 감독도 맡았고..

 

그때 정국 최고 수준의 테니스 경기를 보아왔던 것이 내가 지금껏 33년간이나 테니스를 쳐 온 계기가 되었다...

밤에 자습하다 몰래 여기 테니스장 들어와서 연습 공 을 몇개 훔쳐 달아나던 기억이

 얼마나 가슴 쫄였는지... 연습공일지라도 그래도 도둑질였으니..

고 3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아봤고 대학 와서부터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테니스는 나의 가장 소중한 취미가 되었다...

 

 

학교 구경후 예전 하숙집을 찾아 가봤는데 기억이 가물거리고 도무지 어디간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자산동 고3때 하숙집고 장군동 고 2때 하숙집 근처를 차를 몰고 다니다가

고 1때 누나랑 자취하던 신마산 역 주변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옛날의 흔적은 없고...  

북마산 구마산 신마산 역으로 이저지던 기차길은 기차 레일만 해안도로에 파뭍힌 체로 남이있고...

그 옛날 그 집은 흔적도 찾을 길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동동과 창동쪽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옛날 할매 아구찜 식당 옆을 지나면서 다음에는 이 집에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 생각..

 

서마산 I.C 올려 집으로...대구로...

 

다음에는 큰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