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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도

영주 부석사(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위치한 1,300 여년전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고찰

 

최순우님의 "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라는 책으로 한층 더 유명해진 부석사 무량수전은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때 지은 집으로 창건연대가 '확인'된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랜 것이다

우라나라의 사찰 중 종합 점수로 매겨 1위 라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토달 사람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

강호동의 1박2일에도 나왔다고 하고...

누구나 억수로 꼭 한번은 가고싶어하는 절집...

 

영주 부석사는 이번이 두번째...

 

10년전인 2002년 가을 친구 김원장(칠곡 로즈마리병원) 가족과 함께 1박 2일로 충주 ES 콘도에서 작고 다음날 영주 부석사로 갔었다..

그 때는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10월 말이라서 부석사 가는 길의 사과밭의 빠알간 사과와 부석사 입구에서부터 무량수전으로 가는 길의 노란 은행잎이 참 예뻤었다...

 

 

 

 

 

 

 

10시 대구 출발

12시 영주 청정한우 도착 점심 식사 1시 출발 부석사까지는 시내에서 약 1시간 가량 걸렸다.

오후 2시 부석사 도착 입구에 넓은 주차장 있고 주차비는 승용차는 3천원

 

 

대구(타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에서 부석사로 갈 경우 영주 I.C에서 내리지 말고 그 다음인 풍기 I.C에서 내려서 가면 훨 가깝다...

우리는 고기집 들리느라...영주에서 내렸지만...

 

 

 

 

 

 

 

 

 

 

 

 

 

 

 

 

영주 부석사 입구

 

 

 

 

바람이 거의 안 불고 날씨도 영상 10도 정도로 매우 포근함....

 

 

 

 

흰 부분이 ( 콘크리트 ) 인공 분수대  지금은 겨울이라  분수대는 휴업중..

 

 

 

 

 

 

 

 

 

 

 

 

 

부사 한박스 2만원

 

 

 

 

 

감은 곶감이나 감말랭이 만들듯이

사과도 약간의 흠이 난 사과는 깍아 말려서 사과 말랭이를 만든다고 하는데  먹어보니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오는 길에 한봉지 샀다..

 

 

 

 

부석사 입장료는 어른은 1200원   ^^ 싸다..

우리나라 최고의 절집인데 입장료는 가장 저렴한 듯...

 

 

 

 

대부분 이 곳을 그냥 지나치는데 꼭 읽어보고 들어가야된다.. 알아야할 중요 사항들이 요점 정리 되어있는 곳이기 때문...

 

 

 

 

매표소를 지나 들어가면 어느 절이나 그렇듯이  일주문이 나온다 집으로 치면 대문..

중수 기념비가 나오고 당간지주천왕문이 나온다...우리나라 절 대부분이 이 순서로 나온다..

은행나무길 지나 가파른 돌계단 오르면 좌우로 동탑 서탑의 3층 석탑이 나오는데 이 3층석탑은 무량수전 옆 3층 석탑(국보)하고는 다르다  

그리고 2층으로 되어있는 범종각(목어와 북이 있는) 을 지나면

역시 2층 누각인 안양루가 나타나고 안양문을 지나면  국보인 석등무량수전이 나타난다...

 

 

 

 

 

읽어보시면 좋겠지만 이 긴 글을 어누 누가 읽어보랴^^

 

요점만..

 

신라 문무왕 16년에 해동 화엄종의 할배인 의상대사께서 왕명을 받아 창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 석등과 삼층석탑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등 국보급 수두룩

 

무량수전은 고려 공민왕때 몽고침략에 의해 불타고 고려 우왕때 새로 지음

 

부석사라고 이름 지은 연유는 무량수전 뒷편에 부석(뜬 돌) 이라는 큰 돌이 있어서 부석사라 함

 

요정도만 알아도 훌륭^^

 

 

 

 

 

일 주 문

 

 

 

 

태백산 부석사

 

 

 

 

1달전만 해도 은행잎 단풍이 너무나 예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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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전의 모습 리뷰..

 

 

 

 

 

 

친구 김원장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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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다 떨어지고 은행알만 주렁주렁..

 

 

 

 

 

 

 

 

 

 

 

 

 

 

 

 

탱자(가시)나무

 

 

 

가시나무

 

어릴적 우리집 담벼락은 탱자 가시나무

저 가시를 꺽어서 저녁에 흐릇한 불빝 아래 대청마루에 온 식구 둘러앉아 해거름에 강가에서 잡은 고디(다슬기? 올갱이?) 를 깠었지...

까는 고디보다 먹어치우는 고디가 더 많았지...

바늘이 귀한 당시에는 가시나무 가시가 바늘 역할을...

 

 

 

 

중수(새로 지음)기념비

 

 

 

당간지주

 

 

 

읽어보면

당간지주란 쉽게 말하면 국기게양대..

절에서 행사하면 깃발을 달아맬때 깃대 고정용 지주를 당간지주라 함

알아두면 좋은 상식^^

 

 

 

 

더 자세히 알아볼 사람은 읽어보시길

 

 

 

 

 

 

 

 

 

천왕문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동탑 서탑 두개의 3층석탑과  범종각이 보인다

 

 

 

 

서탑과 동탑

 

 

 

3층 석탑 ; 서탑과 동탑의 쌍탑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건실하고도 장쾌한 느낌이 든다.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지나면 가파른 계단, 몰아쉬는 숨을 들이키면 범종루가 눈앞에 들어온다.

이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반기고 서 있다.

이 탑은 원래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석사의 경관을 흐트리지않고 잘 조화되어 있다.

탑은 지석대 위에 상·하층 기단을 쌓고 우주와 탱주를 각각 새겨 격식을 갖추고 있다.

서탑에는 익산 왕궁리 5층탑에서 가져온 석존사리 5과가 분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동탑

 

 

 

 

서탑

 

 

 

 

 

범종각 안을 통과해서 안양루와 무량수전으로 통하는 독특한 동선....

 

 

 

 

 

 

범종각과 뒤로 보이는 안양루

 

 

 

 

 

 

 

 

 

범종각에는 봉황산 부석사 현판이 있다

 

 

 

 

 범종각에 종은 없고

 

 

 

 

목어와 북만 있네...

 

 

 

 

 

 

범종각을 지나면 2층 누각인 안양루가 나타난다

 

 

 

 

2층 누각인 안양루(1층은 안양문) 가 나타난다

 

 

 

 

안양루의 입구쪽 즉 1층은  (안양)문이고

 

 

 

무량수전 쪽 나오는 쪽  2층의 누각은 안양루라고 쓰여져 있다 

 

즉 하나의 2층 건물이 출입문과  누각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안양은 곧 극락을 뜻한다

 

 

 

 

안양문을 통해 안양루를 지나면

 

 

 

안양루에서 무량수전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최대한  잡히는 폭이 이 정도...

거리가 가까워서이다..

 

다른 대웅전은 정면을 다 넣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무량수전은  그게 불가능하다...

 

공민왕이 썼다는 무량수전 현판과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의 옆모습

 

 

 

(퍼온 글)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 김애선'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되 고도의 기법들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집을 만든 대목(大木)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무량수전의 천장 가구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천장을 노출시키려면 각각의 부재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고 또한 정확하게 짜맞추어야 하므로 품이 훨씬 더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목수들은 이러한 건물을 많이 지었다.

특히 고려시대 주심포 집들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것이 많다.

원래 내부 바닥에는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 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고려 공민왕의 필체라고 하는데..

무량수 라는 말은 수명이 영원하다  즉  Not die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국보인 무령수전 앞 석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등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과 화엄사각황전 앞 석등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이 있는데

법주사쌍사자석등이 특색이 분명한 석등이고 화엄사 석등이 거대함을 자랑스로 삼듯이 이 부석사 앞 석등은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는 석등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석등이며 보살상이 조각되어있다

 

 

 

 

보살상

 

 

 

 

 

처마와 풍경

 

 

 

 

옆에서 보면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안허리곡

 

처마를 받치는 기둥이 수직이 아닌 약간 기울여져 있다

위쪽 기둥이 안쪽으로 쏠림...

안 쏠림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가장자리 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 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위 아래 부분이 중간보다 가늘다..배흘림 기둥 

이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배흘림 기둥

 

착시를 막기 위한 목적 외에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글이 있다

단순한 이유  즉 아래 위 기둥의 폭을 줄이면 기둥이 놓여지는 상하 보와 석축 크기를 작은 크기의 돌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목수가 아무 생각없이  돌 크기를 줄일 목적으로 배흘림 기법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는...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소백산 능선을 잘 볼려면 시간을 잘 택해야 할 것 같다...

역광으로 인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해질녁이 나을까? 아님 동틀 무렵이 나을까...

 

 

 

 

 

 

 

부석사의 3대 국보

 

 

 

 

 

 

무량수전 앞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이 불상이 바로 국보인 소조여래좌상

일명 아미타 여래좌상

무량수불 (영원 불멸의 부처님)  

 

 

안에 들어가서 보니 너무나 엄숙 경건...

감히 사진촬영을 할 수도 해선 되지도 않을 상황..

 

그래서 무량수전 안을 잘 살피고 보고난 뒤 나와서  문 밖에서 최대한 문 틈으로 줌을 당겨서 찍음..^^

전각은 남향인데 불상은 동향...특이함.. 천정 역시 화끈하게 뚫려있음... 

 

 

 

 

무량수전 좌측으로 가보면 뒤에 부석사라는 절이름의 유래가 된 부석이 있다..

 

 

 

 

 

부석

뜬 돌...바닥에서 공중으로 떠 있는 돌..

 

 

 

 

저 평평한 돌이 부석인데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왠지 어딘가 어느 부분인가 붙어있을 것 같은 느낌...^^

 

 

 

누가 실(밧줄?)을 넣어 확인해보니 실이 통과되더라는데...??

분명 바닥에 붙어있진 않다는데....

 

 

부석사 무량수전 왼쪽 뒤편에는  부석이 존재를 하는데 무게는 100여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 부석도 용이 된 선묘라는 여인과 정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의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래 이곳 부석사가 될 자리에는 500명이 넘는 도적 무리가 있었는데

의상의 마음을 안 선묘가 부석을 공중에 날아다니게 만들자 도적들이 다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무량수전  우측(동쪽) 뒷편에 있는  선묘 낭자의 전설이 깃든 선묘각

 

 

 

 

 선묘 낭자 초상화

 

 

 

 

 

 

 석사의 선묘각 꼭 보고가봐야할곳중에 하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같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원효대사는 해골물을 마시고 깨닫게 되어 아미타사상,일심론등을 만들었고

의상대사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화엄사상을 배운 후 집대성을 해왔다.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할때 의상대사를 사모한 이 선묘라는 여인이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되어 의상대사를 수호했다는 전설이 있다.

의상대사의 부석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이 선묘라는 여인은 정말 부석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있다.

이 선묘라는 여인을 자세히 보면 절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정말 화려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여인 선묘.

머리에는 장식품을 달고 화장을 한 선묘라는 여인.

이 선묘라는 여인을 기리기 위해 맞배지붕 형식인 선묘각이라는 서당을 만들었다.

사실 이 선묘각 안에 있는 선묘라는 여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용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부석사 삼층 석탑(국보는 아니고 '보물'이라고 함)

 

 

 

 

 

 

 

 부자지간

 

 

 

 

부부지간

 

 

 

모자지간

 

 

 

 

지금은 이렇게 훌쩍 커버린 (키가 185cm) 작은 아들이지만  10년전에는...

 

 

 

10년 전에는 아역배우 ^^

 

 

 

 

 

 

 

 

 

10년전 사진

소백산 능선이 잘 보인다..

 

 

 

 

 

 무량수전 외 또 다른 국보인 조사당으로...

 

 

 

 

조사당은 삼층석탑을 지나 오르막 돌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나온다

 

 

 

 

 국보인 조사당과 그 옆에  의상대사가 지창이를 꽂은 자리에서 자라났다는 선비화..

 

 

 

 조사당 옆 자인당과  응진전

 

 

 

 

자인당

 

 

 

응진전

 

 

 

 

 

 

 

 

삼성각

 

 

 

 

쇠종이 있는 범종각

 

 

 

 

부석사를 나온 시각이 오후 4시경

우리는 서둘러 숙소가 있는 백암온천으로 달렸다...